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(빌 2:17)
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나를 관제로 부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. 빌립보교회를 위해 스스로를 부어 드릴 수 있겠다는 바울사도의 말씀에 나도 뭔가 멋있는 것에 생을 걸어 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.
이것이 내 욕심의 모양인 것 같다. 누가 봐도 멋있는 일을 만들어서 성취하고, 그것을 위해 한 생을 던진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. 또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할 일이더라도 누구도 하지 못할만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희생을 하는 것도 언듯 생각하기엔 한 생애 던지기에 아깝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.
하지만 이 생각에서 나는 스스로 하나의 작은 문제점을 발견했다. 그것은 이런 일들이 다 나의 현실, 삶의 현장 밖의 일이라는 것이다. 내 현실을 위해 투자하기 보다는, 이상적이고 매력있어 보이는 위치를 꿈꾸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 것이다.
왜 난 내 가정, 내 교회, 내 회사, 내 이웃을 위해 나를 관제로 드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였던 것일까? 작은 현실에 성실치 못한 사람이 어찌 크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있을까?
아직도 결승점에서 너무나 먼 스스로를 발견하고, 다시 다짐하며 출발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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